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Ω 데스크칼럼
개발에 쫓겨나는 최경창과 홍랑      
시민연합신문     2021/07/12    추천:0     조회:1176  
 조선 중기 관기이면서 미모와 시재(詩才)가 뛰어난 사람으로 홍랑이라는 인물이 있다. 둘도 없는 효녀였지만 일찍이 어머니를 잃고 관기가 되었다. 당시 관기는 선발 과정에서 시를 짓고 가야금 등 음악, 가무에 능해야 했다. 최경창과 홍랑의 만남과 사랑이 오백 년이 지난 지금도 심금을 울리고 회자되는 것은 왜일까. 최경창(1539년~1583년, 호는 고죽)은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당시 이이, 송익필, 최립 등과 8문장으로 일컬어졌고 또한 백광훈, 이달 등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도 불리고, 서화에 뛰어나고 피리를 능숙하게 다룰 정도로 당대 문장과 시(詩), 서화에 뛰어난 인물로 칭송을 받았던 인물이다. 선조 6년 고죽이 평안도 북평사로 임직 할 때 환영 행사에서 홍랑을 만나게 된다. 홍랑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된 최경창은 진정으로 위로한 것이 홍랑의 마음을 사게 됐다. 평소 최경창의 시를 흠모해 왔던 홍랑은 일개 미천한 자기를 생각해 주는 최경창이 고마워 한없이 눈물을 흘렸고, 이후 둘의 사랑은 시작됐다. 그것도 잠시 이듬해 봄 고죽이 서울로 발령을 받아 떠나게 되면서 홍랑이 한밤중에 시를 지어 최경창에 보낸다. <묏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에게/ 주무시는 창밖에 심어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잎이 나거든 저인 줄 여기소서>.
 서울로 돌아온 고죽은 병이 들어눕게 된다. 이런 소식을 들은 홍랑은 7일 밤낮을 걸어 한양에 도착해 문병했다. 당시 비상시국에 관원이 기생과 함께 놀아났다는 반대파에서 문제를 제기해 최경창은 파직하게 된다. 하지만 최경창은 파직보다 홍랑과의 이별을 더 가슴 아파했다. 당시 그 심정을 시로 썼다. <두 줄기 눈물 흘리며 서울을 나서네/ 새벽 꾀꼬리가 헤어지는 걸 알고서 수 없이 울어주네/ 비단옷 천리마로 강 건너고 산 넘는 길/ 아득한 풀빛만이 혼자 배웅해주네>. 파직 후 최경창은 변방 한직으로 떠돌다 선조 9년(1583) 45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죽이 죽은 후 홍랑은 스스로 얼굴을 상하게 하고 고죽의 무덤에서 3년 동안 곡을 하고 시묘살이를 했다. 이후 홍랑이 죽자 최 씨 문중에서 최경창 부부의 무덤 아래에다 묻어 주었다. 당시 유교를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문중도 홍랑의 극진한 사랑을 인정해 준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기구한 사랑과 이별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안타깝기만 하다. 애초 최경창과 홍랑이 있는 최 씨 문중의 묘가 파주시 월롱면 영태리에 있었는데 1963년대 에드워드 미군 부대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묘가 있는 교하 청석동으로 옮기게 됐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60년이 지난 올가을에 다른 곳으로 이장을 하게 됐다. GTX-A노선이 최 씨 문중 묘역 밑으로 지나게 되면서 최 씨 문중은 조상 묘 밑으로 기차가 다니는데 그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가을 파주시 적성지역으로 이장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최경창과 홍랑의 사랑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숙연해진다. 어찌 이런 사랑이 있을 수 있을까 계급사회와 철저한 유교 사회의 틀을 뛰어넘어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최경창과 홍랑은 그런 소설 같은 사랑을 했던 것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게 없을 것 같다. 그들의 사랑은 사랑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문학적으로 승화시켰는데 그 의미가 더 크다 할 것이다. 최경창은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져 있었고, 홍랑의 시(詩)는 대학교 국문학 교재에도 나와 대학생들이 최경창과 홍랑의 묘를 찾을 정도로 문학적으로 가치가 높고, 보존 가치가 충분한 문화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파주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임에도 물구하고 그런 문화재가 개발에 밀려 정처 없이 떠다녀야만 한다는 것이 후손으로서 부끄럽기만 하다. 이번 최경창 홍랑의 묘 이전을 보면서 우리 주변에 개발에 밀려 보존해야 할 문화재가 손실되거나 훼손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점검하고 살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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