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해 죽기까지 싸울 것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볼테르가 21세기 대한민국 파주시에서 울부짖는다. 26일, 파주시는 시정에 비판적인 기자의 입을 틀어막고, 진실을 담는 카메라를 부수며 언론자유의 조종(弔鐘)을 울렸다. ‘소통홍보관’이라는 직책이 무색하게, 그는 불통의 장벽을 쌓고 권력의 충견(忠犬)을 자처했다.
이날 한 언론인은 폭력적으로 취재현장에서 내쫓겼다. 시장은 그의 카메라를 밀쳐 취재를 방해하고, 공무원은 온몸으로 그의 앞을 막아섰다. 부끄러운 장면이 펼쳐지는 동안, ‘선택받은’ 다른 기자들은 묵인 속에 행사장을 유유히 들어갔다.
‘친김’, ‘반김’이라는 편 가르기는 언론의 본질이 아니다.
언론은 권력의 편이 아니라, 주민의 편에 서야 한다. 연풍리 주민들이 수십 년간 겪어온 고통을 외면하고, 공청회 한번 열어달라는 그들의 처절한 외침에 귀를 닫은 파주시의 오만함을 제대로 감시하고 있는가?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려는 시도에 맞서 함께 싸우지 않는다면, ‘언론인’이라는 이름은 스스로 버리는 것이다.
언론의 역할은 권력에 대한 감시다. 시장과 지방정부가 주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라면, 그 운영의 모든 과정은 주민 앞에 투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언론은 그 과정을 기록하고 비판하며, 주민이 알 권리를 보장하는 통로다. 그런데 특정 언론의 출입을 막고 물리적 제지를 가하는 순간, 행정은 더 이상 주민과 소통하는 조직이 아니라 권력의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하는 폐쇄적 집단으로 전락한다.
기자가 행사장에 들어가 주민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것은 특권이 아니라 의무다. 그러나 그 의무를 수행하려는 길을 권력이 두 팔로 막아섰다.
언론을 향한 물리적 봉쇄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비판 언론을 배제한 채 우호적 언론만 통과시키는 것은 곧 시정 홍보 쇼에 불과하다. 파주시가 주민 공청회조차 열지 않은 채 공공시설 개발을 몰아붙이고, 그 과정에서 비판 언론의 눈과 귀를 막는다면, 이는 행정이 아니라 지배이며, 소통이 아니라 억압이다.
파주시는 이 사안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언론에 대한 물리적 제지와 차별적 통행은 파주시민 전체의 권리를 침해한 사건이다. 권력이 투명해지려면 불편한 질문을 허용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찬양의 합창이 아니라 이견과 비판의 충돌 속에서 비로소 숨을 쉰다.
파주시는 대추벌 성매매 집결지의 폐쇄 이후 여성인권센터, 시립요양원, 파크골프장 등 공공시설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해당 지역주민들은 수십 년간 군사시설보호법과 기지촌의 그늘 속에 재산권조차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럼에도 시는 주민 공청회조차 열지 않고 일방적인 개발 계획을 내세웠다. 주민들의 반발은 필연적이었고, 목소리를 낼 권리를 요구하는 벽화 시위로 이어졌다. 바로 이 시점에, 언론의 자유까지 억압된 것이다.
권력에 우호적인 언론만을 받아들이고, 비판적 언론을 배제하는 태도는 민주주의를 근본에서부터 훼손한다.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면 주민의 알 권리 역시 사라진다. 행정이 불편한 목소리를 차단하는 순간, 시민들은 귀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다.
다시 볼테르의 말을 떠올린다. 표현의 자유는 동의할 수 없는 말까지 지켜내는 힘이다. 파주시가 주민과 함께 진정한 민주적 공동체로 나가려 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벽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문을 여는 일이다. 언론을 가로막는 순간,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그리고 그 책임은 고스란히 권력을 쥔 자들의 몫이 될 것이다.
오늘의 치욕은 단지 한 기자의 수모로 끝나지 않는다. 이는 파주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려는 폭거이며,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수모를 당한 파주바른신문의 이용남 기자는 외치고 있다. “후배 기자들이여, 각성하라! 볼테르의 외침을 가슴에 새기고, 굴종의 펜을 던져버려라. 오늘 쓰러진 동료의 곁에 서서 함께 싸우지 않는다면, 내일은 바로 당신의 차례가 될 것이다. 무너진 언론자유를 위해, 파주시민을 위해 다시 일어서야 할 때다.”라고.
고기석기자 koks7@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