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주인? 책 속 흔적을 추적하는 책탐정!
책탐정 윤성근, 흔적으로 사람을 잇다.
파주 문산수억고등학교(교장 김진희)는 지난 5월 22일, ‘흔적이 남은 책,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을 주제로 「윤성근 작가와의 만남」을 운영하였다. 책에 남겨진 흔적을 통해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독서를 매개로 한 연결의 경험을 확장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행사는 도서부 ‘북소리’ 학생 22명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사전에 『헌책 낙서 수집광』, 『헌책 기담 수집가』 등을 읽고 토론 활동을 진행한 뒤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하였다. 특히 도서부 북소리는 ‘1318 책벌레들의 도서관 점령기’ 사업에 참여하고 있어, 학생들이 행사 기획부터 운영까지 직접 맡아 진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더했다.
‘헌책방 주인? 책 속 흔적을 추적하는 책탐정!’
윤성근 작가는 서울 은평구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헌책방 주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 헌책방처럼, 작가 역시 모자장수를 연상시키는 모자를 쓰고 다닌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중고책을 사고파는 사람에 머물지 않는다. 헌책에 남겨진 흔적들을 따라가며 그 안에 숨겨진 삶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책탐정’에 가깝다. 특히 헌책 속에서 누군가 남긴 손글씨 메모를 발견할 때 가장 설렌다고 말하는 그는, 세상에 똑같은 책은 없다고 한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는 우리의 삶 또한 저마다 다른 흔적과 이야기를 남기며 흘러간다.
‘책에, 감히, 낙서를 하라구요?’
작가와의 만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학생들의 ‘반듯한’ 독서 습관이었다. 학생들은 늘 교육받아 온 대로 책을 깨끗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책 위에 밑줄을 긋거나 자신의 생각을 적는 일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번 독서 활동에서는 책에 흔적을 남기며 읽자고 안내했지만, 선뜻 낙서를 하지 못하고 포스트잇으로 조심스럽게 마음을 표현한 학생들도 적지 않았다.
조금씩 밑줄 긋기와 메모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책 위에 자신의 생각을 남기기 시작했다. 인상 깊은 문장 옆에 짧은 감상을 적고, 그림이나 기호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다른 학생이 남긴 흔적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며, 한 권의 책 안에서 서로의 감정과 생각이 이어지는 특별한 독서 경험을 만들어 갔다.
‘책탐정 윤성근, 흔적으로 사람을 잇다’
윤성근 작가는 장정일의 「삼중당 문고」를 낭독하며 강연의 문을 열었다. 강연이 끝날 무렵이 되어서야 학생들은 작가가 왜 이 시를 소개했는지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삼중당 문고」의 화자는 인생의 가장 불안하고 거칠었던 순간에도 끊임없이 책을 읽는다. 이하경 학생은 책이 단순히 지식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과 함께 성장해 가는 동반자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작가는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기 학생들이 자신만의 ‘좋은 친구 같은 책’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시를 소개한 것이다.
또한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서관 앞에서도 정신없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읽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이연후 학생은 책을 읽는 일이 단순한 취미를 넘어 인간에게 얼마나 절실하고 고귀한 행위인지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특히 헌책에 남겨진 작은 흔적들을 통해 책을 읽었던 사람의 삶을 상상하고 이야기를 복원해 가는 작가의 작업은 마치 셜록 홈즈를 떠올리게 했다. 『사랑과 인식의 출발』이라는 책에 적힌 이름과 주소만을 단서로 수년에 걸쳐 부산과 마산을 오가며 실제 책 주인을 찾아낸 이야기는 학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책의 여백과 속지에 남겨진 짧은 메모와 혼잣말 속에서 한 사람의 시간을 상상하고 이야기를 이어가는 작가의 모습은 학생들에게 매우 인상 깊게 다가왔다. 학생들은 “AI 시대에도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일 같다”는 반응을 보이며,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내용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누군가와 공유하며 교감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전했다.
‘이야기로 나눔을 잇다’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고 지식을 얻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책장을 덮는 순간, 나와 책의 관계는 시작된다. 여기에 같은 책을 읽고 먼저 흔적을 남긴 누군가의 이야기가 더해진다면, 한 권의 책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특별한 매개가 될 수 있다. 헌책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학생들은 이번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책 속 수많은 이야기와, 지금 여기서 같은 책을 읽으며 저마다의 흔적을 남기고 있는 친구들을 상상해 보았다. 또한 책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공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도서부 북소리 학생들은 작가에게서 배운 ‘책탐정’과 ‘이야기 수집가’의 감각을 바탕으로, 다가오는 학교 축제와 연계한 나눔 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에 담긴 추억과 이야기를 함께 공유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물건과 이야기를 함께 전달·교환하는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나눔과 공감의 가치를 더욱 확장해 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