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신뢰는 총이나 제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공정한 수사와 책임 있는 행정에서 나온다. 그런데 경기북부경찰청이 보여준 이번 행태는 그 신뢰를 스스로 무너뜨린 어처구니없는 난맥상이다.
김경일 전 파주시장의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직인이 찍힌 수사결과 통지서를 고발인에게 우편으로 발송했다. 통지서에는 혐의별로 '송치'와 '불송치' 여부가 명확하게 기재돼 있었다. 이는 경찰이 공식적으로 작성하고 발송한 공문서다.
그런데 언론 보도가 나온 바로 다음 날 아침 담당 경찰관은 고발인에게 전화를 걸어 "통지서가 잘못 나갔다. 아직 사건은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공문서의 효력이 전화 한 통으로 뒤집힌 것이다. 대한민국 행정이 이 정도 수준인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특정 언론사에 기사 수정을 요청했다는 제보다. 만약 사실이라면 경찰은 잘못된 공문서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언론 보도부터 수정하려 했다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은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직인이 찍힌 공문서인가, 아니면 경찰관의 전화 한 통인가.
최근 경찰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제주에서는 경찰의 부실 대응과 사건 처리 논란으로 국민적 공분을 샀고, 전국 곳곳에서 수사 지연과 봐주기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막강한 수사 권한을 갖게 된 경찰이 오히려 책임성과 투명성에서는 퇴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문서 오발송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수사 결과는 개인의 명예와 권리, 정치적 운명까지 좌우하는 중대한 국가 행정이다. 이런 문서가 잘못 발송됐다면 누가 결재했고, 어떤 절차를 거쳤으며, 왜 발송 이후에야 오류를 알았는지, 외압은 없었는지,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이번 사건은 감찰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오발송 경위를 공식 해명하고 관련 책임자를 문책해야 한다. 또한 외부 감사를 통해 수사 절차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
법치는 공문서 위에 세워진다. 공문서가 전화 한 통으로 뒤집히는 나라라면 국민은 경찰을 신뢰할 이유가 없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이번 촌극을 '실수'라는 한마디로 덮으려 하지 말고,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책임부터 다해야 한다.
고기석 기자 koks7@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