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추벌, 성매매집결지 마침표 찍다
    • 성매매는 끝내겠습니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합법적인 생업으로 전환하겠습니다. 사람과 상권, 마을을 함께 살려주십시오.”

      지난 3일 파주시청 앞에 선 대추벌 성매매 종사자들의 목소리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었다. 수십 년 삶의 터전을 스스로 내려놓겠다는 쉽지 않은 결단이자, 이제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달라는 절규에 가까웠다.

      김경일 시장이 그렇게 공권력을 동원해 강압적으로 폐쇄하려 했지만 실패에 그쳤다. 하지만 손배찬 시장이 대화와 타협으로 성매매집결지 해결 방안을 제시하자 종사자들도 자진폐쇄에 나선 것이다. 이번 기자회견은 용주골, 대추벌 등으로 총칭되는 성매매집결지의 오명을 씻을 수 있는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대추벌과 용주골의 역사는 오늘의 잣대만으로 재단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 한국전쟁 이후 용주골 일대에는 미군기지가 들어섰고, 1953년 파주읍에 미2사단이 배치된 데 이어 1956년 미군 휴양시설이 설치되면서 본격적인 기지촌이 형성됐다. 학술연구에 따르면 용주골은 1950~70년대 국내 최대 규모의 기지촌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고, 당시 미군을 통한 달러 경제는 국가경제와 지역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다.

      정부 역시 이 역사의 바깥에 있지 않았다. 1961년 윤락행위방지법을 제정하면서도 전국에 특정지역을 두었고,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등록과 정기적인 성병검진 등 국가 차원의 관리가 이뤄졌다. 정부에서는 도로건설, 가로등 설치등도 행정적인 편의를 우선적으로 해줘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용주골에는 1963년 등록 여성만 295, 1969년에는 800여 명에 달했고 기지촌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상권을 이루며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그곳에는 화려한 네온사인 뒤에 여성들의 눈물과 애환이 있었다. 가난 때문에 흘러들어온 여성도 있었고, 한때 인신매매와 착취 등 어두운 그림자도 존재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곳은 연풍리 주민들의 생활경제와도 수십 년간 얽혀 있었다. 식당과 가게가 생겨났고 누군가는 밥을 하고, 청소하고, 물건을 팔며 가족을 먹여 살렸다. 용주골이 미군기지에 의존한 거대한 서비스 경제권으로 형성됐다는 연구도 이를 뒷받침한다.

      1970년대 미군기지가 이전·철수하면서 용주골은 쇠락하기 시작했다. 자료에 따라 구체적인 철수 시점에는 차이가 있지만, 대추벌 일대의 기지촌 경제가 미군 철수와 함께 급격히 위축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후 오랜 세월 남겨진 성매매집결지는 김경일 전 시장 당시 강제폐쇄 정책이 추진되면서 종사자·업주·주민과 행정이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이제 손배찬 시장은 대화와 타협, 공론화를 통한 해결이라는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답이라도 하듯 종사자들이 먼저 성매매를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이제 행정은 그 결단 뒤에 남겨질 사람들의 삶을 보아야 한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종사자와 업주, 성매매업 쇠락으로 인해 함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을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행정이 적극 나서야 한다. 공론화(公論)가 자칫 공론화(空論化)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종사자와 업주, 건물주, 주민 등 직접 이해당사자들이 테이블에 앉아 생업전환과 상권회복, 마을재생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대추벌은 강제폐쇄라는 네 글자가 아니라 상생과 재생이어야 한다. 아픈 역사를 지우는 데 그치지 않고 그곳에서 살아온 여성들이 당당하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그래서 모두가 승자가 되고 모두가 역사에 남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추벌이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성매매집결지 가운데 하나라는 오명을 벗고, 성매매는 끝냈지만 사람은 버리지 않은 전국 최초의 상생·재생 모델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고기석 기자 koks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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